일상잡설

126개의 글 · 1 / 7 페이지

일상잡설 2026.09.01 · 4분

만날 봉逢

전날 밤, 내 마음에는 자꾸만 ‘만날 봉(逢)’이라는 글자가 맴돌았다. 십 년도 넘게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면서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찾으려 했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찾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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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6.07.30 · 3분

1번 누나

돈벌레라 불리는 그리마 한 마리가 침실 바닥에 나타났다. 어릴 적부터 그 벌레는 죽이면 안 된다는 막연한 금기가 내 안에 있었다. 왠지 그걸 보면 머지않아 돈이 들어올 것만 같은, 근거 없는 기대도 함께 따라붙곤 했다. 예전에는 따뜻한 부잣집에서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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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6.07.13 · 2분

선교지에서 온 메모

직원 선생님과 함께 은행에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발이 미끄러지며 그만 진흙탕에 털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1인 인출 한도가 있어 둘이 함께 가야 돈을 많이 찾을 수 있었는데,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우선 눈앞의 상황부터 수습해야 했다. 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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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6.06.17 · 3분

외로울 고孤

텃밭에 오이를 비롯하여 여러 열매가 달리는 계절이다. ‘외로울 고孤’는 ‘아들 자子’와 ‘오이 과瓜’의 결합이다. ‘아들 자子’야 워낙 익히 아는 글자이므로 사족이 필요 없다. ‘오이 과瓜’는 양쪽 덩굴손과 덩굴손 사이에 덩그러니 맺은 오이의 모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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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6.05.16 · 5분

노래 요謠

‘노래 요謠’라는 글자는 ‘말씀 언言’, 소릿값이면서 ‘천천히 흐르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질그릇 요䍃’로 이루어져 말을 천천히 늘여서 노래한다는 뜻으로 ‘풍문’이나 ‘소문’의 뜻까지 담았다고 했다. 그런데 노래나 말이므로 ‘말씀 언言’이 붙어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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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6.04.15 · 4분

두려움

두려움을 나타내는 한자어는 여럿이다. 이들은 두려움이 생겨나는 원인과, 그것에 반응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결을 지닌다. ‘두려울 공(恐)’은 외부의 위협 앞에서 마음이 얼어붙는 일반적인 두려움이다. 근거 없이 엄습하는 ‘공황(恐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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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6.04.02 · 7분

일곱 칠七

성경의 ‘일곱’을 추적하다가 일곱을 두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곱의 매력에 빠진다. 기원전 2500년이나 3천 년쯤에 티베트에서 시작하여 히말라야산맥을 가로질러 지금의 파키스탄을 관통하는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인류 고대 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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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6.03.11 · 6분

웃음

‘배(腹)를 그러안고(抱) 고꾸라져 넘어질(倒) 정도로 몹시, 끊어지게(絶) 웃는다’는 뜻으로 ‘포복절도抱腹絶倒’라는 말이 있다. 이를 두고 누군가가 유식함을 뽐내느라 ‘포복졸도抱腹卒倒’라고 적어놓은 것을 보고 한 번 더 웃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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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6.03.03 · 6분

잎 엽/땅 이름 섭/책 접葉

비가 종일 내린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이미 가지에 맺혀있던 이른 꽃눈이 조심스레 열릴 것이다. 성질 급한 풀들이 먼저 고개를 들고, 수많은 잎이 거대한 약동을 시작할 것이다. ‘(나뭇)잎 엽葉’은 ‘풀 초艹’ 더하기 ‘인간 세世’ 더하기 ‘나무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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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6.02.02 · 8분

꿈 몽夢

어떤 시험장에서 시험지에 답을 써야 했다. 여럿이 함께 있는 시험장이었는데, 각양각색의 무더기로 놓인 종이들 가운데서 자기가 원하는 시험지를 골라 서술형 답을 쓰는 방식이었다. 잠시 미적거리다 종이 더미에 다가갔을 때, 내가 좋아하는 양면 백지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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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6.01.01 · 5분

초록별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이야기이다. 은빛, 금빛, 노랑, 하양, 파랑, 초록…. 어느 날 이 형형색색의 별들이 모여 하느님께 하늘에서만 말고 땅에서도 살아보게 해주시라고 청했다. 위에서만 내려다보던 땅의 사정을 몸으로 체험하며 느끼고 싶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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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5.12.05 · 4분

풀 타령: 엉성할 초/풀 초草

풀들이 빛을 잃고 시들해졌으며 죽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뭇잎들이 수북하더니 어느새 눈이 쌓여 풀들은 자취를 감추고 눈 세상이 되었다. ‘풀 초草’는 ‘풀 초艹(艸)’라는 의미부 글자와 ‘일찍 조早’라는 소리부 글자(조→초)가 합해져 만들어진다.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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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5.11.10 · 12분

그랜드 캐년

미국 생활을 청산하기 전, 나를 오랫동안 잘 아시는 미국 신부님께 내가 미국을 떠나기 전 꼭 했으면 좋을 것 같은 것이 무엇일까를 여쭤보았다. 신부님의 망설임없는 대답은 '그랜드 캐년 방문' 권고였다. 그래서 설레임 속에 말로만 듣던 그랜드 캐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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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5.11.05 · 4분

두 번 부르심

쓸어야 할 은행잎이 많다. 숲이나 호숫가의 낙엽은 쓸 필요 없이 그대로 두어야 멋이지만, 복잡다단한 인간사 안에 떨어진 나뭇잎들은 멋이기는커녕 자꾸 쓸어야 하고 쓸리는 천덕꾸러기들이다. 쓸어야 할 낙엽처럼 부르심의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성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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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5.09.30 · 5분

가을, 10월

9월은 가을의 문턱이다. 9월이 들어서면서 도무지 떠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물러나고 있다는 것을 심리적 안도감으로 느꼈다. 9월은 영어로 끝이 ‘~ber’로 이어지는 달들(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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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5.09.15 · 16분

한처음에 ChatGPT가?

컴퓨터 앞에 앉으면 컴퓨터의 여러 브라우저가 경쟁하듯 서로 자기에게 무엇이든 물어보라 한다. 낯설었던 AI는 어느새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AI와 검색 엔진이 결합한 대화형 검색 도구들만 하더라도 무척 다양하다. ChatGPT(Open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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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5.09.10 · 6분

성낼 분憤‧忿

‘ 분노 ’라는 말을 한자어로 찾으면 ‘성낼 분憤’을 써서 ‘분노憤怒’라고 하거나 같은 뜻을 가진 ‘분忿’이라는 글자를 써서 ‘분노忿怒’라고 쓴다. ‘분憤’이나 ‘분忿’은 전혀 다른 글자이지만, 뜻이 같으므로 서로 통용이 되는 ‘통자通字’이다.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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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5.08.28 · 8분

<고백록>

블레이즈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년)은 방대했던 자신의 장서를 주변에 모두 나눠주고 「성경」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두 권만을 간직했다고 알려진다. 성경에 인간과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이야기가 담겼다면, 고백록에는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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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5.08.05 · 20분

희망: 유토피아 & 디스토피아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유토피아, 즉 지상의 완전한 사회를 꿈꾸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유토피아의 정반대인 디스토피아 - 사회가 극도로 잘못된 악몽 같은 모습 - 에 대해서도 숙고해 왔다. <세상의 주인(Lord of the Worl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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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2025.07.13 · 7분

오르페우스Ὀρφεύς, 음악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Orpheus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의 리라 연주를 듣는 이는 인간이나 야수를 막론하고 그에게 매료되어 유순해졌으며, 수목이나 암석마저도 그의 음악에 감동하였다. 그가 연주할 때면 수목들이 그의 주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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